대유학당 대표 / 철학박사 윤상철 글
‘저팔계’의 뜻은 ‘팔계를 지킬 줄 아는 돼지’
돼지의 성격은 <서유기>라는 소설에 나온 저팔계에 잘 나타나 있다. 원래 저팔계의 처음 법명은 ‘저오능’이다. 산적질을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받은 법명으로, ‘능력을 깨달은 돼지’라는 뜻이다. 저오능이 관세음보살의 말씀에 개과천선하며 삼장법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과 도교에서 금하는 세 가지 음식을 먹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는데, 삼장법사가 정과를 얻으려면 계속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팔계를 지킬 줄 아는 돼지’라는 뜻의 ‘저팔계’를 법명으로 주었다. 손오공의 ‘공을 깨달은 원숭이’라는 뜻보다는 못하지만, 계율을 지키는 훌륭한 불제자이다.
다만 아직 본능이 앞서기 때문에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 먹을 것과 예쁜 여자 앞에서는 체면불고하고 먼저 달려가고, 일을 하라고 하면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안 한다.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앞장서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손오공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등, 좋은 일 앞에서는 급한 성질이요 나쁜 일 앞에서는 천하태평이다. 별로 좋지 않은 욱하는 성질에 온갖 잘난 체를 혼자 다하지만, 순진한 면도 있어 예쁜 여자로 둔갑한 요괴에게 의외로 쉽게 속아 넘어간다. 먹을 것과 여자에 약한 것이다.
돼지의 본능을 잘 나타낸 장면이 있다. 바로 <서유기>의 끝부분에 있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이 부처의 반열에 오르는 논공행상 광경에서이다. 서방 극락정토에 있던 불경을 14년이라는 긴 세월의 천신만고 끝에 동방의 나라인 중국으로 전한 공을 높이 사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삼장법사 일행에게 과위를 주셨던 것이다.
삼장법사는 돈독한 신앙을 바탕으로 불교의 깃발을 높이 들어 동방에 전한 공덕이 있다고 해서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로 삼고, 손오공을 마귀와 괴물을 굴복시켜 세상을 평화롭게 하였다고 해서 ‘투전승불(鬪戰勝佛)’로 삼았다. 그런데 저팔계는 부처가 아닌 ‘정단사자’로 임명한 것이다. 정단사자는 부처님께 공양물을 올리는 제단을 깨끗이 하는 역할이다. 일은 엉망으로 했지만, 손오공보다 낫다는 자존심으로 뭉친 저팔계다. ‘손오공에게도 부처의 과위를 주시는 후덕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나에게는 무슨 이름의 부처를 주실까 ’ 하고 잔뜩 기대하던 터였다.
울그락불그락 불만이 가득한 저팔계를 보고, 석가모니부처님이 달래는 말씀을 하신다. “그대는 입심도 세고 일도 잘 하지만, 몸은 게으른데다 식탐이 많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는 음식을 치우며 먹으면 그 또한 편하고도 좋은 일이 아닌가 ” 이 한마디 말씀에 울컥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만 것이다. 사실 부처님을 상대로 더 떼를 써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돼지의 게으름과 타협정신
하느님께서 동물들에게 성기를 나누어 주실 때다. 자기를 닮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다른 동물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받아갔다. 그런데 돼지는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있다가, 다른 동물들이 성기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급해졌다.
헐레벌떡 뛰어가서 막 하늘로 돌아가려고 하던 하늘나라의 사신을 붙들고 “내 것도 주고 가야죠!”하였다. 그 사신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보다시피 하나도 없이 다 주었네. 다음에 올 때 자네 것을 챙겨서 가져옴세.”하였다.
그랬더니, 그렇게 느긋하고 게으르던 돼지가 갑자기 급한 성격을 드러내며 “말도 안 돼요.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 하면서 떼를 썼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을 ‘돼지가 돌격한다’는 뜻으로 ‘저돌적(猪突的)’이라 하지 않던가!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견디다 못한 하늘나라 사신이 동물들의 성기를 묶었던 새끼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라도 쓸 테냐 ”하고 물었다. 돼지도 더 떼를 써봐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그머니 그 새끼줄을 받아 자신의 몸에 붙였다. 그래서 돼지의 성기는 새끼줄처럼 비비 꼬이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모양도 좋지 않고 포장용 새끼줄로 만든 것이지만, 다른 동물들의 성기를 묶었던 것이라서 그런지 새끼를 많이 낳고 또 쑥쑥 잘 자랐다고 한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성기를 받지 못할 뻔 했지만, 곧 후회를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타협을 함으로써 성능 좋은 성기를 받게 된 것이다.
돼지꿈 해몽
어떤 사람이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니, 꿈 해몽하는 사람이 “먹을 것이 생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찾아가 또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니, 이번에는 “입을 것이 생기겠다.”고 해몽하였다. 또 찾아가서 돼지꿈을 꾸었다고 하니, “몽둥이 찜질을 받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해몽하였다.
‘먹을 것, 입을 것, 그 다음에는 황금인가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갔던 그 사람이, “왜 똑같은 돼지꿈인데, 이번은 흉하냐 ”고 물었다. 그랬더니 “돼지가 처음 꿀꿀거리면 배가 고파 그런가 보다 하고 먹을 것을 준다. 그래서 ‘먹을 것이 생긴다’고 한 것이다. 그 다음 꿀꿀거리면 추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덮을 것을 넣어주는데, 또 꿀꿀거리면 미쳤나 보다 하고 작대기로 때려주는 법이다.”고 하였다. 이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면, 돼지가 찾는 것이 먹을 것과 입을 것 밖에 더 있느냐는 뜻을 담고 있다.
고구려의 도읍지를 찾아준 돼지
그렇다 해도 돼지의 순박함은 신들도 좋아해서, 고구려에서는 돼지로 희생제물을 삼았다.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에 쓰는 돼지를 교시(郊豕)라고 하였는데, 죽기 싫었는지 틈만 나면 달아났다. 유리왕 때 달아나는 교시의 힘줄을 몰래 끊은 관리를 중벌로 다스리고, 하늘제사에 쓸 신성한 돼지라 해서 묶어놓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 후 달아나는 교시가 다칠까봐 졸졸 따라가다가 발견한 곳이 국내성이다. 돼지가 도읍지를 점지해준 것이다.
산상왕 때도 달아나는 교시를 쫓아가기만 했는데, 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미녀가 나타나 아주 손쉽게 돼지를 잡아주었다. 산상왕이 그 여인을 보고 반해서 혼인을 해서 아들을 낳았고, 교시 때문에 얻게 되었다 해서 ‘돼지 체’자를 넣어서 교체(郊彘)라 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고구려 11대 임금 동천왕이다. 이렇게 돼지를 제사에 올리는 풍속은 계속 전해져서, 지금도 굿이나 고사에 돼지머리를 쓰는 풍속이 남아있게 되었다.
돼지는 먹고 노는 데에는 일등이고, 또 음기가 많은 동물이라서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구려의 도읍터를 찾아주고 왕자를 낳아줄 여인을 소개해 주고, 또 단순하고 순박한 마음이 있어서 하늘과 땅에 제사지낼 때 희생으로 쓰인 것이다. 또 게으를 때는 한없이 게으르다가도, 필요하다 싶으면 하늘나라 신하에게 성질을 내면서 ‘내 것 내놓으라’고 급하게 몰아칠 정도로 추진력( )도 있지만, 돼지꿈 해몽에서 보았듯이 평소에는 먹을 거와 입을 것에만 관심이 있다.
별자리로 본 돼지해의 길흉
돼지띠를 하늘의 별하고 연관시키면 실수와 벽수에 해당한다. 이 별들은 토목공사, 비밀을 간직한 도서관, 별장, 척후대, 야전진지와 참호, 기상대, 홍수와 댐, 목축, 저장곡식 등과 관련이 있으므로 유의해야 하고, 지역적으로는 강원도에 해당하므로 강원도의 길흉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해라고 볼 수 있다.
개업식 때 선물하는 돼지그림을 보면, 암퇘지가 여덟~아홉 마리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돼지 돈’자와 ‘돈’(豚)이라는 우리말의 발음이 같으니, 더욱더 많은 돈을 벌라는 것이고, 많이 낳고 많이 먹는 돼지처럼 많은 결실을 맺어 부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돼지해에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을 ‘저돌적’이라 하고, 먹을 것만 찾는 등 욕심이 많은 사람을 ‘돼지 주둥이’라고 하듯이, 너무 저돌적이고 돼지 주둥이가 되지 않도록 해야 좋지 않을까!
돼지해가 좋은 것은 다 알지만,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학대사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태조 이성계에게 말한 것이고, 부처님께서는 ‘자량(資糧)’을 말씀하시고 ‘보시’를 말씀하신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