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세계불교도 법왕으로 추대된 미얀마 연방승가회 회장 우 꾸마라 사야도 스님.세계불교법왕청의 출발이 된 2017년 10월 12-13일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된 아시아 불교연합 발족식. 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라오스,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캄보디아, 인도 등 10개국 참가.
세계종교의 중심( ) 교황청
서기 29년경 카톨릭 제1대 교황 베드로에서 제2대 리노로 이어지면서 부패한 중세 가톨릭 교회와 교세가 쇠락하면 할수록 마녀사냥에 극성을 보였던 종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단으로 꼽히는 천주교. 그러나 중세 천주교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그 부패의 최정점에 교황이 있었다 교황직은 임기에 관계없이 사망 전까지 맡게 되는 종신제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책 중의 하나다.
천주교의 부패에 반발하여 태동한 개신교의 탄생이 될 정도의 쓰린 역사를 가진 가톨릭은 분규와 수없이 많은 사연의 역사를 안고 2013년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내려오고 있는 교황청을 보면서 교황청을 들여다 본다.
교황청은 교황을 보좌하면서 전 세계 가톨릭 신도를 통치하는 기구로서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의 행정기구도 겸하고 있다. 중앙기관으로 행정 사법 진흥과 업무 국무성을 비롯한 9개 부처와 의회 3개의 법원과 11개 평의회와 3개 사무처를 두고 있으며 외무평의원은 교황의 외교 영역을 담당하고 전 세계 각국 정부와의 관계를 책임지고 있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독립국가로서 각 나라에 대사관을 두고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교황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서경보 스님 업적 이어 큰 결실 맺어야
그렇다면 세계불교의 현 주소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큰스님과의 인연에서 문도는 아니지만 상좌이상의 사랑을 받기도 한 스님 중에 살아 생전에 세계불교 포교에 큰 업적을 남기신 스님 중에 일붕 서경보 스님(1914~1996)을 빼놓을 수는 없다. 전 세계를 누비며 기네스북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최다 저서 677권, 최다 박사학위 71번, 통일을 기원하는 시비(詩碑) 630개를 건립하는 왕성한 모습을 보이셨다. 특히 1992년 스리랑카에서 법왕청 문제를 거론하시고 지지자들의 호응으로 법왕의 자리에 오르셨다가 1996년 6월 25일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시다. 큰스님이 이루신 업적은 경이롭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런데 상좌부권과 세계불교에서 법왕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기도 전에 타계하시어 열매를 맺지 못하셨다는 점과 법인조차 만들지 않으신 것이 크게 아쉬웠다. 세계 많은 승려들이 존경하는 큰스님이셨으나 이를 뒷받침해줄 조직과 기구와 보좌해줄 전문적인 인물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전무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서경보 큰스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불교계에서는 법왕이나 법왕청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있는데다가 문도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화합의 장이 없이 추모법회조차 4군데로 나누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언제나 서경보 큰스님께서 초대 법왕임을 강조하고 추모하는 정도이지 이를 세계화시킬 준비나 조직이 없었고 화합조차 이루지 못함을 필자는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후 각종 법왕, 승왕이 난무하다보니 자신들이 세계인의 존경은커녕 한국불교계에서조차 내세우지 못하는 위치에서도 알아주는 이 없는 독불장군식이거나 나 홀로 법왕, 승왕이 넘쳐나 한국에서 30여 명이 법왕, 법황 등과 승왕이라는 명칭을 부끄럼 없이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현상은 한국 불교계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중국 대만 불교계에서는 자신이 법왕이다 하고 명함을 주면 그들은 웃는다. 세상에 없는 큰스님이라 웃는 것도 기뻐서도 아니다. 자칭 법왕들은 그들이 비웃는 줄도 모른다. 그리고는 한국에는 왜 그리 법왕이 많으냐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법왕이라 추대했느냐고 묻는다. 어느 법왕은 태국의 어느 종단의 종정이 법왕으로 추대했다며 가짜 증서까지 만들어 추대되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가 국제적인 문제가 생길 위험에서 한국 불교의 대 망신이기에 필자가 가까스로 무마한 적이 있다.
취임식에는 속세 과거 왕들처럼 왕관을 쓰고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다 보니 한국불교계에서는 법왕이나 법왕청 이야기만 나오면 아예 들으려조차 않고 무조건 이단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심지어 이상한 스님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인터넷에서 법왕청을 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납골당 분양이다. 세상에 법왕청이라는 명칭을 쓰는 곳에서 납골당을 분양한단다. 한 곳도 아닌 여러 곳이다. 다른 나라 불교계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서 한국을 뭐라 평할지 아찔하고 무서워진다. 불교도들의 단합과 위상을 드높이고 각국 나라와의 교류로 하나임을 내세워야할 한국불교에서 법왕청이 납골 분양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한국 불교가 이런 모습이니 타종교들이 불교를 어떻게 볼까 걱정이 앞선다. 가톨릭의 교황이 한마디 하면 세계 뉴스에서 메인뉴스로 나오고 다른 나라를 방문할라치면 온 나라가 영접 문제로 시끄럽다. 그것뿐인가 교황청에서 파견된 대사의 권위나 위치도 대단하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는 승려로서만이 아닌 부처님의 불제자로서 피가 솟구쳐 오른다. 아직 수행이 부족한 탓인가보다 라고 말하기엔 오늘날의 한국 불교계의 현주소가 한탄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 스님의 신분으로 부처님의 미소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큰스님처럼 의연한 자세로 불법을 논하며 유식한 척 세상에 더없이 많은 경전을 섭렵한 척해야 하는데 무식이 탄로가 나도 어쩔 수 없이 속인들처럼 표현하고자 한다. 속된 표현으로 쌍스럽고 방정스럽게 승려이기 앞서 추한 모습의 꼴값을 떨었나보다. 보나마나 많은 불교인들이 자기가 뭔데.. 잘난척하기는.. 에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비난과 시기 질투 별별 소리가 귀가 성치 않을 정도일거다. 그러나 이왕 필을 잡았으니 할말을 하고자 한다. 왜 우리 불교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시끄럽고 안 좋은 뉴스만 나오는가 조용하다 싶으면 시위대가 몰려오고, 누구는 물러가라 볼썽 사나운 모습들이 지속된다. 하나 지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시작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면 반대와 멸시부터 쏟아지는가. 아예 꼴보기 싫다고 별별 소리로 죽이려 든다. 그런 용기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데 관심 좀 가져야 되는 것 아닌가 불교의 위상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필자는 교황청과 교황 가톨릭이 부러웠다. 왜 우리 불교는 그들 종교인들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있는데도 자신들의 안위와 평안만을 생각하고 밥그릇만 바라보고만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사단법인 세계불교법왕청의 출발
누군가는 깃발을 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멸시와 부끄러울 정도로의 비방과 모략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일어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2010년부터 자료수집과 정보를 수집하고 2013년에 사단법인 ‘세계불교 법왕청’ 이라는 명칭으로 법인 등록을 하였다. 참으로 운이 좋았는지 부처님 가피인지 몇몇 단체에서 세계불교법왕청의 이름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등록하지 못하고 뒤에 다른 명칭을 덧붙여서야 법인등록을 하게 되었지만 그들 모두 ‘세계불교법왕청’이라는 명칭을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하고 있다. 자신들이 모셨던 스님이 초대 법왕이니 자신들이 법인이 없더라도 이 명칭을 써도 된다고 억지 아닌 억지로 대물림하는 듯이 당당한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 정도로 하고 필자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이 뜻을 같이 하는 스님들과 한 마음이 되어 어느 나라 스님이든 세계가 존경하는 큰스님을 법왕으로 추대하고자 법왕 추대위원회를 구성하고 2013년 10월 23일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세계불교도들의 법왕을 모시고자 하는 출범식을 봉행하였다. 수없이 많은 모임을 갖기 위해 여러 종단 소속 스님들과의 교류를 갖게 되었다.
우선 추진위원회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련스럽게 뛰어 다녔다. 스님들이 모인 곳마다 법왕을 모셔야 하는 당위성과 절차 등을 열심히 설명하였다. 그러던 중 미처 생각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목탁 자신이 법왕이 되려고 저런다”는 비방이 앞서고 있었다. 이때부터 다시 대중 앞에서 “나는 법왕의 그릇도 안되고 그런 일은 꿈도 꿔보지 않았다”며 “하늘이 열 조각이 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필자의 목소리보다 비방과 시기, 질투의 소리가 더 커서 움직이는데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하나같이 스님들의 독선과 옹고집 그리고는 비방, 방해 등이 심히 무섭고 힘들었다. 아무리 나는 아니다, 부처님은 보고 계시는데 하며 스스로 위로와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중국, 일본, 대만,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의 불교계 큰스님들을 친견하며 동참을 호소하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세상의 벽이 이렇게 두껍고 높은 철벽의 담이 있는 줄 몰랐다. 조그만 논두렁 둠벙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한결같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의 찬사는 모두였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깊고 깊은 사연들과 복잡한 부분들이 많았다.
자주 초청하고 만나지만 속사정은
중국은 중국대로, 대만은 대만대로 이미 30여년 전부터 이름만 법왕청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세계 조직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지금도 30∼50여 개국 대표들이 모이는 대규모 조직을 자랑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화교들이라 진정한 각 나라 대표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중국은 한중일 불교를 주축으로 활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요사이 국제회의를 자주 갖는다. 특히 남방불교 큰스님들을 대거 초청하면서 그들의 세를 과시하곤 한다. 후진국 불교 국가 큰스님들에게 후한 대접을 한다. 그런 관계로 초청하면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회의에 참석한다. 초청하는 거니까 참석한다.
그러면서도 세계불교에 대해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준다면 과연 상좌부 불교를 수호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에서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을 지킬 수 있겠느냐에 상당한 관심과 염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상좌부권에서는 그들만이라도 똘똘 뭉쳐있느냐 하는 문제다. 그들은 이웃사촌처럼 아주 가깝게 지낸다. 큰 행사가 있으면 자주 초청하고 만난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속사정은 다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우선 태국 불교계를 노크했다. 큰스님을 친견하는데 아주 복잡한 절차가 있다. 불교협회를 거쳐야 하고 큰스님의 비서진들을 통과해야 한다. 미팅의 이유와 친견과 합당해야 한다. 그저 인사차 방문은 곤란하다. 수차례의 거듭된 방문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여러 불교국가 큰스님들을 방문하여 법왕청 설립의 당위성을 역설할 때에는 그들은 한결같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분에 넘칠 정도의 칭찬도 듣는다. 그러나 누구를 법왕으로 모신다는 데에는 큰 의견차를 보인다.
예를 들면 미얀마의 승려수는 60만∼65만 명에 이르고 태국의 경우 승려 수가 20만명이라도 태국에서 국제회의를 자주 개최하는 관계로 기득권은 태국이 가져야 한다는 식의 이견이 나올 수가 있고 테라와다 불교와 밀교, 그리고 대승불교가 하나 되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대승권에서는 후진국에 속한 소승권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소승권에서는 대승권의 승려를 그저 수행자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대승권과 소승권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 과제가 그리 쉽지는 않다. 다행히도 소승권의 종주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미얀마 불교국에서 미얀마 연방정부의 종교성 장관 역시 이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앞장서 두터운 벽을 허무는데 앞장 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승권에서의 모습을 보면 한중일 불교협회가 매년 활발하게 움직인다 무얼 하느냐고 묻는다면 곤란하다. 하는 것이 없다. 불교 교류 차원의 친목단체인지 서로 교대로 회의를 주재하고 법회 보고는 아무 것도 없다. 세계불교로 한발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중국불교는 미얀마 종교성 장관을 만나 테라와다 불교가 앞장서서 세계불교가 하나가 되자 라고 청하는가 하면 일본은 일본대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런 내용은 미얀마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다. 대만은 대만대로 혼자서 이끌어 보겠다고 매년 행사를 개최하곤 한다. 도대체 화합의 모습이 없다. 모든 나라들이 각자의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움직이고 있다. 1회성 행사를 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버리면서까지 거창한 행사를 하는데 그 속엔 알맹이가 없다. 그리고는 몇나라가 참석하는 큰 행사라는 것만 홍보하는데 정신이 없다. 행사 끝나면 모든 것이 끝이다.
이런 실정에서 필자가 세계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설득하는데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니 정말 이렇게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무는 모습으로 화합이라는 단어, 하나가 된다는 단어가 필요 없는 형국이다. 설사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진지한 대화가 오가도 헤어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연결이 안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불교 집안의 현주소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실정은 어떠한가. 앞서 한국불교 법왕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처럼 이단화의 모습으로 비추어 한국불교 대표종단이라는 곳에서는 아예 법왕청의 법자도 꺼내지 못하도록 출입기자들에게 당부하는 실정이고 보니 그래도 군소종단 스님들과 이끌어 보려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며 지도자들을 영입하고 추대를 해왔으나 임명이나 추대장을 받고는 아예 무소식으로 일관한다. 그래도 침묵과 동참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경비를 단 한번도 부담하지 않으면서 가져갈 줄만 알지 협조할 생각 없이 요구사항 많고 불평불만이 난무해도 일일이 받아줄 여력이 없어 의견을 무시하면 돌아다니며 온갖 험담을 다한다. 잔치상 거나하게 차려주고 뺨 얻어 맞는 격이다. 베풀어 주고는 죽일 놈이 되는 일들이 허다했다. 필자의 최측근들의 헌신적 도움으로 그래도 이렇게 이끌어 오는 것조차 기적같은 일이었다.
상좌부권 승왕 회의 통해 법왕청 기틀 마련
이러다가는 10년이 아니라 백년, 천년이 가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2016년 6월 2일 미얀마 연방승가회 회장이시고 종정이신 우 꾸마라 큰스님을 세계불교법왕청의 이름으로 세계불교도들의 법왕으로 추대하는 의식을 미얀마 종교성 내 사사나승가대학 대강당에서 봉행하고 나서 각 나라 스님들을 승왕으로 모시는 일을 지속해 왔다. 이후로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은 고통이 국내외로 겹칠 때마다. 필자 자신의 무능을 한탄하면서 원력과 서원 그리고 덕망까지 갖춘 인물이 못됨을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그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부처님 세상을 이루겠다는 신념 하나로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쓰러지면 부처님 자애의 지팡이에 의지하여 일어서는 오뚝이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오뚝이 라지만 더 이상 한계에 부딪쳐 영원히 일어설 수 없는 지경까지 올 것만 같았다. 평생에 목탁 너의 삶을 평한다면, 네가 원하는 서원 소원성취 했느냐 묻는다면 50∼80%가 아니라 내 목표에 200∼300% 달성하며 살았다고 자부해온 필자였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미얀마 불교수호협회 회장이면서 미얀마 재벌 5명 안에 속하는 Dr 킨쉐이 회장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재산을 불교 위상과 보존, 그리고 중흥에 아낌없이 보시하는 살아있는 관세음보살 같은, 불교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하고 귀한 분이다. 이분과는 30년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아주 가까우면서도 만남에도 예의를 갖추는 어려운 분이다. 이분에게 미팅 약속을 하고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좀처럼 말하기 힘든 어렵고 어렵고 어려운 법왕청 건립과 세계불교도들의 법왕을 여법하게 모실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후 Dr 킨쉐이의 평생 은인이자 스승이신 짜익티오성 큰스님 서원을 말씀하시며 생전에 이루지 못한 불사를 제자에게 물려주신 것 같다며 쾌히 동참하시겠다고 약속을 주시었다.
2017년 12월 5년 임기의 초대 법왕에 미얀마 우꾸마라 스님 추대
오는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67개국 대표 모여 연합 봉축법회 예정 아시아 불교연합 발족식에 참석한 각 국가의 불교대표들 전체 기념촬영목탁스님이 아시아 불교연합 발족식에 참석하여 한국스님들을 대표해 서명하고 있다.
필자는 너무 기쁜 환희심에 부처님의 사랑에 Dr 킨쉐이에게 두손 모아 합장을 올렸다. 당신이 살아있는 부처님이요 중생의 고통을 함께하고자 하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이시다 라고... 미얀마 불교수호협회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한국은 다섯 나라의 대표자들의 경비를 부담하는 선에서 준비하여 2017년 12월 상좌부권 승왕들과 각 나라 대표들이 모여 3일간의 회의와 행사를 통해 법왕청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법왕청의 살림은 미얀마 불교수호협회에서 책임지고 승가는 한국의 단체에서 관리하는 형식으로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불교수호협회에서 상좌부권 지도자들을 나라별로 초청하고 방문하면서 설득을 거듭한 끝에 초대 불교도들의 법왕은 미얀마의 우꾸마라 사야도가 추대되면서 5년의 임기 후에 그 다음부터는 모든 나라 지도자들이 돌아가면서 법왕으로 추대하는 형식을 갖추도록 정관을 개정했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나라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당분간 이런 체제로 나아가면서 법왕청 건립이나 법왕 종신제 등도 충분한 토의로 서서히 결의하도록 했다. 소승불교에서는 각 나라의 승왕들이 동참하고 대승권에서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불교단체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나라 종단 및 단체를 받아들여 1+1 , 1+2 이런 식으로 각 나라의 단체를 하나하나 영입하겠다는 프로그램으로 정관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음력 4월 8일이 유엔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여 태국에서 각 나라 대표들이 모여 토론으로 오는 5월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67개국 대표들이 모여 봉축 법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초청장을 발송했으며 필자의 단체도 초청장을 받은 바 있다. 2020년 세계불교도대회를 미얀마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제 한국불교도 형식적인 행사, 불필요한 낭비적 행사를 지양해야 한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고 안일한 일상에서 벗어나 중생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곧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종단이나 소속되어 있는 단체가 적극적으로 세계 대열에 동참하고 주역으로 활동할 각오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세계불교의 위상에 부처님 세상을 위해 한국의 ‘세계불교법왕청’의 모든 권한을 아무 조건 없이 넘겨줄 용의도 있다.
필자는 하고 싶은 말 지면에 다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 이제 한국불교 대표종단과 단체 그리고 400여 개가 넘는 군소종단 하나 하나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감싸고 포용하는 자세와 무시하고 헐뜯는 추한 모습에서 격려와 찬사의 박수를 보내는 자애로움을 보여줄 때라 생각한다.
불교의 위상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헌신과 희생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불자들의 얼굴만 바라보는 시대에서 생산불교 자립하는 불교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안일함과 편안함을 떨쳐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생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승려라 하더라도 청정해야 옳지만 때 묻지 않은 중생 어디 존재하는가. 서로서로 격려하며 잡아주고 이끌어 주어, 물고 늘어지는 추한 승가의 모습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한국불교가 세계불교도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불교로 거듭나길 필자 서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