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원리를 이해하여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실천해 경험으로 꿰뚫는 행위가
있어야만 해탈과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언어명상에 대하여 깨닫고 꿰뚫었다면 이제는 행위원리에 집중하여 명상하여야 한다. 즉 사는 동안 행해지는 많은 행위들 중에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하여 그 원리에 집중하여 깨닫고 명료하게 꿰뚫어 알아차려야 한다. 뭇 삶들의 삶에서 다양한 행위들은 생각에 따라 그 나타남이 다르게 된다. 즉 올바른 생각, 건전한 생각, 자비로운 생각을 갖춘 자에게는 모든 행위가 올바르고 건전한 모양으로 나타나지만, 악의나 미움 또는 원망의 생각 등 독소를 가진 생각에 집착되어 있는 자의 행위는 모두 불건전한 모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생각이 언어를 낳고 언어가 행위를 낳는다는 연기의 원리로서 한번 만들어진 행위는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깊이 새겨야 한다.
붓다는 등각경 행위품 가르침에서 “(5절)‥‥‥살아있는 뭇 생명들을 존중하여 그들의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상대가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불건전한 음행을 하지 않는 청정한 삶을 살아간다면 이것을 올바른 행위라고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건전한 행위들은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 것일까 모두가 욕망을 조건으로 존재의 환희에 묶여 감각적 쾌락에 탐착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생명은 소중하게 느끼면서도 뭇 삶들의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느끼지 못하여 어리석게도 살생을 범하게 되고, 자신의 것에 대한 소유 욕구는 증대되어 있으면서도 타인이 소유하는 물품에는 경시하는 왜곡된 차별성이 주지 않는 물건을 탐착하게 만들고, 타인에게는 절대적인 규범이나 금계를 강요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한 오만함과 아집에 대한 인식의 허구가 불륜을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견해에 집착되어 독단이 쌓인 자는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붓다와 진리와 참모임마저도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어리석음으로 그의 생각과 행위는 모두 악업을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자양분이 되어 결국 현생과 내생에 끝없는 고통을 만들어 놓게 된다.
붓다는 등각경 행위품 가르침에서 “(16절)‥‥‥행위에 의해서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서 기술자가 되고 행위에 의해서 상인이 되고 행위에 의해서 수행자가 되나니 이 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하여 존재하느니라. (17절)이것은 마치 달리는 수레가 축에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뭇 삶도 행위에 매여 있는 것이니 수행자의 행위는 착하고 건전하고 자애롭고 온화하고 지혜롭고 여유로워야 하느니라.”라고 하시며 스스로 행한 행위가 결국 자신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는 것에 대한 행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등각경에서 붓다는 “고기를 먹지 않거나 삭발하거나 고행하거나 진언을 외우거나 안거 하는 등”의 보여주기 위한 행위만으로는 “어리석은 자와 의혹을 여의지 못한 자를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니 반드시 원리를 이해하여 깨닫고 그 깨달음을 실천하여 경험으로 꿰뚫는 행위가 있어야만 해탈과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수행자여 “출가자는 남을 해치지 않는 님이고, 수행자는 남을 괴롭히지 않는 님”이라는 담마빠다 가르침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 삼업을 청정히 하는데 용맹정진하세나. (다음 호에 계속)
수완나(견불선원 선원장)
이현원 기자(bultop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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