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대선사(1896~1968)


도를 배우려면 먼저 눈밝은 스승에게 나아가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불도(佛道)를 성취하려고 뜻을 지닌 이는 발심(發心)과 지혜심과 정진심(精進心)과 진실심과 견고심(堅固心)과 정행심(正行心)과 그밖에 정어(正語), 자리행(自利行), 이타행(利他行) 등 여러 가지 행도 아울러 닦아야 한다.

 이제 도를 배우려는 이들이여! 스승을 찾아 참선을 놓지 않으면 결정코 성불할 것이지만 반대로 좋지 않은 탐진치나 도둑질을 저지르면 거기에 상응하는 축생과 가난의 죄업이 따를 것이니, 살피고 살피라.

 불법을 바르게 수행하는 학인은 먼저 마땅히 멀리할 것과 가까이 할 것이 있으니, 가까이 할 것이란 불법을 진실히 믿고 닦아 나가는 지식이요, 멀리 할 것이란 불법을 믿지도 행하지도 않는 중생이니라. 더욱이 아만에 차있는 중생들이나 생사의 길을 돌아보지도 않고 사는 중생들이나 인과를 소홀히 하는 중생들이나 망어(妄語)를 하고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중생들을 멀리해야 하느니라. 만약 이들을 친하고 보면 그 허물과 해가 나에게 미쳐 도업을 성취할 기약이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멀리 바라보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하듯이 배움에 있어서도 높은 스승과 착한 벗을 선택하여 가까이 모셔야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법을 구함에 있어서 언제나 도덕이 훌륭한 스승에게로 나아가 자신의 부족을 닦아 가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공연한 자만심에 빠져 배우지를 않는다. 설사 세지(世智)가 좀 있다손 치더라도 수행력이 뛰어난 스승과 벗을 가까이 모시지 않으면 늘상 도를 미(迷)하여 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출가한 이는 욕심과 세속적인 사랑을 끊어 버리고 자기의 심원(心願)을 알아 불법의 깊은 이치를 사무쳐 부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의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과 벗을 떠나서는 큰 법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큰 스승, 부처님께서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내려 주셨는가. 세인들이 달콤한 오욕에만 얽매여 죽고 사는 무서운 구렁창이가 기다리고 있음을 잊고 날뛰는 가냘픔을 불쌍히 여기신 부처님은 49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팔만사천의 법문을 하루같이 설해 주신 것이다. 크신 부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중생들이 깊은 죽음의 바다에 빠진 줄이나 알았겠는가. 그러니 우선 제일 높고 거룩하신 부처님부터 우러러 받들며,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악인을 멀리하여 악업에 물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제자 아난다를 데리고 거리에 나가셨다. 마침 썩은 고기 위에 놓인 띠와 풀을 보시고 가져오라 하셨다. 아난다는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띠와 풀을 갖고 왔다. 바로 띠와 풀을 쥔 손에 문제가 있었다. 그 손에는 어느새 냄새가 배어 퀴퀴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악업에 물들기 쉬움을 부처님께서 직접 제자에게 가르쳐 보여 준 좋은 예라 하겠거니와 사실 악연은 이처럼 파급성이 재빠른 것이다. 악한 스승과 벗을 사귐에 있어서도 악업의 염습(染習)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경에도 말씀하시기를 “살생을 일삼는 이를 가까이 하면 살생하는 버릇을 배우게 되고 도둑을 가까이 하면 도둑질하는 버릇을 역시 배우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같이 주위의 감염을 주의시킨 경전의 말씀이거니와 같은 것을 두고도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령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소와 뱀이 삭임에 따라 젖과 독이 되듯이 비록 부처님의 정법이지만 삿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그냥 사법(邪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정법을 흉내내어 설했다손 치더라도 그 삿된 사람은 결국 마왕의 탈을 벗을 길이 없으며, 청정한 청중도 마왕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법리(法理)에 나아가는 길은 둘이 아니지만 외도(外道)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천 갈래 만 갈래도 더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스승과 벗을 잘 선택하여 학습해 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고해이며 화택(火宅)이 아닌가. 이러한 고난 속에 살아가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불법은 고난의 인류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행복을 줄 수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도리를 풍부하게 갖고 있느니만큼 지혜 있는 이는 만끽하라.

 세상 사람들아, 죽지 않는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며 처자식 권속을 팔면서 까지라도 죽지 않는 불사약을 구해야 한다. 불사법(不死法)과 불사약을 가진 모든 조사(祖師)와 선지식(善知識)에게 매달려 몸을 돌보지 말고 불사약을 구해내자. 생사병(生死病)에 걸린 중생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죽지 않는 길을 배우지도 듣지도 또 불사약을 구하지도 않는구나.
 우매한 중생들이여, 생사가 두렵지 않은가 
 죽음이 닥치면 악착스럽게 모아 둔 천금만금도 소용이 없고 애착하던 처자권속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직 부처님께서 발명하신 죽지 않는 법만을 아니 배울 수 없으며, 아니 닦을 수 없는 것이다. 범부들의 목적이요 희망인 생멸이 없는 대각(大覺)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만사를 모두 놓아버리고 생사해(生死海)를 건너는 그 길로…. 그러니 세계의 인류는 한 형제가 되어 함께 일체 고난이 범접하지 못하는 부처님의 묘법을 깨달아야 한다. 도를 배우는 이는 무엇보다도 도를 늘 품어 진실하게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공부를 하여 가되 선(禪)을 닦는 마음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다닐 때나 앉을 때나 말을 할 때든 어느 곳과 어느 때를 막론하고 참선하는 마음이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행만 한다면 크게 깨칠 때가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에 되는 것이 아닌 만큼 조금씩 미리 미리 선도(善道)에 인(因)을 심어 가되 언제나 도안이 밝은 스승과 벗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먼 천릿길을 떠나려 할 때면 우선 노정을 정확히 알아야 하듯이 도에 나아감에도 첫걸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항상 선지식과 선우(善友)를 의지해 성불이란 구경 목표인 천리를 향해 차근차근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선지식은 법안(法眼)이 명철하여 설법을 하기 때문에 듣는 이는 모두 환희를 느낄 것이며, 동시에 남자의 성품도 아니요 여자의 성품도 아닌 부처의 성품을 드러내어 보여 주시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 속에 있는 불성을 곧 활연(豁然)히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대오(大悟)는 못한다 하더라도 내생에 성불한 큰 씨앗이 되어 내세에는 꼭 성불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내생의 복과 덕의 종자를 심지 않으면 어떻게 복덕이 구족한 성불의 경지를 성취하리오.

 고덕(古德)이 말씀하되 “죽고 사는 큰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먹고 자는 것도 잊어야 하거늘 어떻게 머뭇거리기만 하는가. 만일 금전으로 생명을 건지려 한다면 금전이 없을 때는 근심이 따를 것이요, 진리를 막연히 믿는 것으로 생명을 건지려 한다면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 것이니, 원하건대 모든 법을 배우는 학법자(學法子)는 잘 살피라.”고 하였다.

 사실 인생은 생로병사라고 하는 험로에서 나날이 죽음을 직면해 가고 있는 것이니, 소나 염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아서 자국 자국이 사지(死地)가 아닌가. 잠시도 생명이 머무르지 않아 계곡에 흐르는 물과 같은가 하면, 오늘 멀쩡하던 몸도 내일에 가서 부지하기 어려운 것이니 또한 허무하기 짝이 없는 몸인 것이다.
 “너희 비구들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세속의 호사(好事)를 버리며 사치한 빛깔이 아닌 한 벌의 괴색(壞色) 옷과 한 발우만의 생활을 족하게 여겨야 한다. 만일 교만심이 일어나거든 곧 없애야 하나니, 교만심을 놓아둔다면 세속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조촐히 생활할 것을 강조한 경전의 말씀이니, 집을 떠나 수행하는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하게 도를 닦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고인(古人)의 말씀에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부처님들이 천변(千變)과 만화(萬化)로 세상에 나오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죽고 사는 큰 문제의 본원(本源)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며 천하 노화상(老和尙)들의 역행(逆行)과 순화(順化)도 한결같이 죽고 사는 문제의 본원을 위한 것이며, 제방납승이 노고를 아끼지 않고 삼십 년, 이십 년씩 애써 공부를 하는 것도 또한 죽고 사는 문제의 본원을 위한 것이며, 법문을 듣는 청중들도 오직 죽고 사는 문제의 본원을 위한 것이라 한다면 사생육도에서 천겁 만겁토록 들락거리며 한없는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죽고 사는 문제의 본원이 매(昧)했기 때문인 것이다. 어쨌든 숱하게 부처님과 조사들이 세상에 나오시게 된 참뜻은 결국 죽고 사는 문제의 본원을 깨닫게 해 주는 데 있다.”고 하였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출현하게 된 본뜻이 죽고 사는 생사문제 해결에 있음을 알려주는 고인의 말씀인 바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바탕이 되고 으뜸이 되는 것이니, 불법에 있어서 믿음은 바로 성불로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엄회상(華嚴會上)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일백일십 성(城)을 다니면서 오십삼 선지식께 두루 참예하여 무상과(無上果)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단지 하나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법화회상에서 8세의 용녀(龍女)가 구슬을 올린 공덕으로 곧 남방의 무구세계(無垢世界)에 가서 성불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믿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또 아나율 존자가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7일 동안 눈을 붙이지 않은 때문에 두 눈이 멀었다가 다시 대천세계가 밝아져 손바닥에 놓인 과일을 보듯이 훤하게 천안이 열렸던 것도 역시 하나의 믿음에서 이룩되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죽고 사는 큰 문제의 본원에 대한 믿음이 철저하지 못하면 출가한 본뜻을 저버리고 헛되게 세월만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시주의 은혜만 잔뜩 걸머진 채 하루아침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두려움은 끓어오르는 솥 안을 맴도는 게와 같을 것이며 아픔은 산 채로 거북이의 가죽을 벗기는 것과 같아서 정신이 아찔하여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무슨 이치로 고통을 면할 것인가. 삼가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법문은 재단법인 금오선수행연구원에서 발행한 금오대선사 법문집 ‘꽃이 지니 바람이 부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