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폭염의 고통은 기억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바야흐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새로운 각성을 하게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사람들은 뭔가를 새롭게 생각한다. 무의식중에도 계절의 변화를 통해 존재의 무게를 느끼고 생존의 전략을 계산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언필칭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오랜 성어를 쓰지 않더라도 가을바람을 느끼면 새로운 생각을 갈망하는 유전인자가 꿈틀거린다. 그러나 독서 풍토는 현저히 변했고 책을 드는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되는 세상에 굳이 책을 사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 어차피 책 또한 스마트폰 안에 들어 있는 하나의 콘텐츠일 뿐이니까.
 
통신생활 문화가 스마트폰의 시대로 급속도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출판계는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전자출판 시장에 대한 과감한 도전보다는 주저하는 분위기 속에 시대는 급변했고, SNS를 통해 읽을거리는 무한정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SNS상의 읽을거리는 생활언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다.

전자출판의 부진 속에 스마트폰이 독서인구를 확보하는 데는 이렇다 할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이 가을, 독서의 계절을 맞으며 시장 상황을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다. 출판시장의 기반이야 어떻든 독서 인구의 저변이 살아 있다면 출판계의 움직임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독서인구가 빈약하기 때문에 시장이 빈약하고, 빈약한 자본으로 시대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 보라.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느냐고.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라. 과연 책을 얼마나 읽으면서 살아가는지. 혹자는 책을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패턴이 확고한 3차 산업 사회에서 넘쳐나는 물질문화를 따라가기 바쁘다. 굳이 책을 읽고 사색을 하면서 살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람이 빵만 먹고 사는가  배가 부르다고 행복하다는 생각에 묶여 있는 것은 사람의 할 바가 아니라던 선인들의 일침이 새삼 따가운 시절이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정제 시키지 않는 삶은 초라하다. 욕망을 좇아가는 브레이크 없는 전차일 뿐이다. 그 욕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위인들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생관을 설계하고 삶의 방향을 전환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책이 없다면, 그래서 인류의 경험에 의한 지식이 축적되고 전승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미개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책은 개인의 인성을 함양시켜 줄 뿐 아니라 인류의 지적재산을 확장하고 전승시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수렵생활에서 농경사회, 산업혁명을 거쳐 첨단미디어 사회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전파한다. 그 메스미디어적 소통의 과정에 받는 스트레스가 지나쳐서 피로를 호소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사회 질서와 도덕이 무너지고 범죄는 끝이 없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과 깊은 사색과 성찰을 동반한 지식 습득의 간격은 그야말로 천지현격이다. 독서는 지식의 습득을 지혜의 성장으로 이끌어준다. 그래서 책 읽는 국민에게 희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땅위를 뒹굴다가 썩어서 다시 뿌리를 통해 나무의 자양이 되는 것이다. 이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이치를 궁구하는 가을, 자신의 삶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사색해 볼 때다. 물론 깊은 사색과 더불어 좋은 책을 읽으며 마음창고를 풍성하게 하는 게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다. 올 가을 독서로 마음창고에 양식을 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