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자선냄비의 소중한 가치

▲김부조(시인·칼럼니스트)

겨울이 깊어질수록 도시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가지만, 거리 한편에서는 늘 따뜻한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드는 구세군의 모금 활동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풍경은 단순한 모금 캠페인을 넘어, 우리 사회가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이나 공동체의 온도를 재는 상징과도 같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이 받은 것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누군가는 풍요로웠던 시간에 감사하며, 누군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버텨낸 자신을 격려한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성찰이 사회적 관계로 넓혀질 때, 그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바로 자선냄비의 기부 문화다.

연말이 갖는 특정한 계절성 덕분에 기부가 집중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마저도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긍정적인 계기가 된다.

우리가 자선냄비 앞에서 내는 동전 몇 개나 지폐 한 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 안에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춥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금액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이며, 그 방향이 모여 사회의 온도를 바꾸어 낸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역사는 한국에서만도 무려 100년 가까이 되었다.

1928년 12월 15일, 당시 구세군 한국 사령관이었던 스웨덴 선교사 조셉 바아(박준섭) 사관이 서울의 중심인 명동 네거리에서 나무막대를 지지대로 한 가정용 무쇠솥을 설치한 뒤 불우이웃돕기를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그 뒤 1965년에 와서는 무쇠솥이 붉은 원통형 양철통으로 바뀌었다.

 

이 작고 붉은 냄비는 그 동안 경제 위기와 사회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우리 곁을 지켜왔다.

때로는 IMF 외환위기로, 때로는 감염병 확산으로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자선냄비는 가장 먼저 차가운 거리 위에 설치되었고, 시민들은 스스로의 사정이 넉넉지 않더라도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이러한 과정을 묵묵히 이어 온 자선냄비의 힘은 결코 ‘거창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캠페인은 일상의 속도 위에서 가볍게 멈춰 서는 단 몇 초의 시간을 통해 완성되었다.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담아 1,000원, 5,000원, 또는 시간이 허락하는 소박한 관심을 냄비에 넣었다
.
그리고 그렇게 모인 작은 온정들은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취약계층 아동에게 식료품과 난방비, 학습지원 등으로 전해지며 한겨울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자선냄비가 단순한 ‘기부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리에 서서 종을 울리는 구세군 곁을 지나며 기부하는 시민들 사이에는 일시적이지만 분명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날마다 화면 속에서만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이 마주 보며 나눔을 실천한다는 점은, 그 자체가 큰 의미로 연결되었다.

즉 이 작은 마주침은 우리가 아직 공동체임을 확인시키는 의식을 닮아 있었다.

 

따라서 자선냄비의 진정한 가치는 ‘금액’이 아니라 ‘관계’를 만든다는 점에 있다.

기부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로 일어나는 행동이지만, 자선냄비는 그 관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한다.

불우한 이웃이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선냄비가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접근 가능한 나눔’이다.

누구나, 어디서든, 준비물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현대 기부 문화의 문턱을 크게 낮춘다.

거창한 기부가 아니어도, 잠시 멈춰 마음을 건네는 행동 하나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자선냄비는 기부를,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시민의 일상적인 참여’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므로 자선냄비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부’라는 행위를 통해 나보다 어려운 누군가의 겨울을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상상은 공감을 낳고 공감은 사회를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자선냄비는 바로 그 상상의 문을 열어주는, 작지만 붉게 빛을 발하는 신호등인 것이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거리그리고에 울려 퍼지는 2025년의 끝 무렵, 우리의 작은 선택이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가기를 기원해 본다.

그 종소리에 담긴 질문을 다시금 떠올린다. “당신의 마음은 오늘, 그 누구를 향해 열려 있습니까”